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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빅데이터/빅데이터 인사이트

[빅데이터 감성토크] 푸른 봄(靑春)의 달관


언제부턴가 청년들에게는 여러 가지 꼬리표들이 따라붙습니다. 88만원 세대, 이태백, 삼포세대, 오포세대, 청년실신. 아마도 이러한 단어들이 청년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무엇보다도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겠죠. 이런저런 세금을 떼고 남은 돈 88만원, 이십대의 태반이 백수,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에 집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해야하는 오포세대까지. 열심히 삶을 살아내려는 청년일수록 이러한 단어들이 꼬리처럼 따라붙게 됩니다. 


최근 한 신문사에서 일본의 사토리 세대에 견주어 만든 “달관세대”라는 용어는 청년들을 표현하는 또 다른 꼬리표로 등장했는데요. 이 단어의 SNS상에서의 반응은 다양했는데요, 어떠한 의견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달관세대

달관(達觀)의 사전적 의미는 사소한 사물이나 일에 얽매이지 않고 세속을 벗어난 활달한 식견이나 인생관에 이름을 뜻합니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기사에서 말하는 ‘달관세대’는 사전적인 의미와는 꽤나 거리가 있는 용어이지만, ‘달관세대’의 바탕인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견주었을 때 현재에만 만족하며 살겠다는 맥락은 통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달관세대’ 기사에 등장한 사례들은 미래에 대한 준비는 없어도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기 때문에 희생을 강요하는 회사보다는 여유 있는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비정규직 혹은 계약직이 더 나은 삶을 유지하게 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개미와 배짱이를 생각해야 한다’, ‘젊어서는 호강하지만 늙어서는 어떻게 될 것 같나’, ‘젊음도 한때다’라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보였지만, 일부는 ‘일리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저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젊은 사람들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등의 의견을 내비췄습니다.  



▒  달관과 포기의 한 끗 차이

그런데 SNS 속 대다수의 반응은 ‘달관세대’라고 칭해지는 청년들이 ‘달관’했다기보다는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경쟁해서 더 나은 삶을 나아가겠다는 것보다는, 현재 누릴 수 있는 것만큼의 삶만 영위하겠다는 것이 삶을 초월했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삶의 어떤 부분들을 포기한 것이지 않겠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포기한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은 또 다른 나머지 것들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테니까요. 그러나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 내 선택으로 인한 것들이 아니라, 그저 내게 주어진 상황이라면 아마 그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상실감과 무력감을 줄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상실감과 무력감에 포기해버린 청년들이 마치 달관한 것처럼 보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어찌 생각해보면 청년들이 포기하고 좌절하는 모습은 ‘학습된 무기력’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경험으로 인해 실제로 스스로의 능력으로 피할 수 있거나 극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에서 자포자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취업의 고배, 직장을 가진 후에 드는 고민, 늘어가는 빚,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청년들은 무기력해져 스스로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상황들마저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지출처  EBS 다큐프라임 캡쳐, 학습된 무기력 실험 中>



▒   포기하면 편해, 하지마



그렇게 달관한 것처럼 보인 청년들이 가장 많이 포기하는 것은 그들이 가장 열심히 노력했던 ‘취업’과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 가고 싶었던 회사, 정규직의 꿈을 이루기 마땅치 않음을 느낀 청년들은 노력했던 시간들과 꿈을 포기하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비정규직이나 원하지 않는 직업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정해진 각본처럼 출산, 결혼, 연애와 같은 일상의 삶들을 포기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상황을 개선해야겠다는 노력마저 접어둔 채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청년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허무주의’, 혹은 ‘안 될거야’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 그림은 만화 <슬램덩크>의 명장명 중 하나를 원작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아 하나의 ‘짤’로 만들어낸 이미지입니다. 실제로 만화에서는 ‘포기하면 바로 그 순간에 시합은 끝나는 것’이라는 대사로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장면이지만, ‘포기하면 편해, 하지마’라는 대사로 바뀌면서 청년들의 ‘허무주의’, ‘안 될거야’라는 정서를 담고 있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정말 ‘포기하지마!’라는 말보다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대사이기도 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면 편해질 거야. 그렇지만,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거야? 조금만 더 노력하자’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 삶에 대해 고민하며 움직여야 할 청춘들에게 ‘달관’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세상을 이미 다 알아버렸다는 그 단어는 더 이상 노력하며 나아갈 세상이 없다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청년들은 여전히 고민하고 고민하며 자신의 삶을 나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달관’ 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고민’하고 나아가고 있기에 그들은 우리의 ‘푸른 봄’입니다.